내 아버지의 고향은 이북이다

인천신문 칼럼 2007/08/27 12:58

내 아버지 고향은 이북이다. 이른바 삼팔따라지라는 설움께나 받고 사신 인생이다. 하지만 월남하기 전 까지는 함경도 단천 어느 고을의 전주 이씨 집성 촌에서 15대를 살아 삶의 뿌리가 든든한 인생이었었다. 집안의 장남이셨는데 1.4 후퇴 때 홀홀 단신, 남하하는 배를 타셨다고 들었다. 우리가 피난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당시 북한에서도 기독교인 이나 지주출신 들이 아니면 자발적으로 피난을 내려 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말씀에 의하면 일단 미군들의 민간인 마을에 대한 엄청난 폭격 때문에 도저히 마을에 머무를 수가 없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다음 평양시내에 온전한 건물이 단 두 채 남았다는 사실이 그걸 증거해 준다. 그리고 중공군과 북한군이 머무를 곳을 아예 없애기 위해 주민들을 모두 강제 소개하고 마을을 불 싸질렀기 때문에 죽지 않으려면 고향을 떠나는 수 밖에는 없었다고 했다.

 

사실은 지주출신이고 반공주의자였던 아버지도 그 대목에서는 승만과 미군에 대해 엄청난 분노를 보이곤 하셨다. 그럴 수 밖에 없으셨던 것이 그 때 내 아버지는 이미 아내와 두 아들 그리고 딸 하나를 둔 가장이셨는데, 그 강제 소개령 때문에 당신의 부모님과 가족들 모두와 생이별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죽지 않으려 강제로 떠밀려 피난 가는 행렬은 이미 육로가 끊긴 긴박한 상황에서 모두 항구로 몰렸다. 하지만 항구에 있는 배는 그 숫자가 턱없이 부족했고, 피난민들을 몰아 놓고는 가까운 거리에서 함포 포격을 해대니 모두가 죽음의 공포에 떨었다고 한다. 그 난리통에 배는 부족하고, 집안의 장남이라도 살리려는 할아버지의 강권에 밀려 아버지는 곧 돌아 오마는 약속만 남기고 혼자 배를 타셨다. 그리고는 그것이 영원한 이별이 된 것이다.

 

6월부터 시작된 전쟁에 1월이 되기도 전에 두 번이나 오르락 내리락 했으니 길어야 한 두 달 안에 돌아 오리라 생각하셨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으셨을 것이다. 전쟁이 그리 오래 끌지도 않으리라 믿고 싶으셨을 것이고, 또 전쟁이 끝난다고 해서 한 민족이 아니 한 가족이 그렇게 터무니 없이 오가지 못할 것이라고는 짐작도 못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북한 가족들의 생사도 모른 채 10년을 넘게 홀애비로 사시다가 내 어머니를 만나고 다시 결혼을 하셨다. 80년대 어느 해에 KBS에서 시작한 이산가족 찾기로 온 나라가 떠들썩 하던 그 때에 우리 아버지는 술을 억배로 드셨다. 아버지도 한 번 찾아 보시라는 조심스런 자식들의 제언에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마다 하시길래, 속으로 참 이상한 양반이다, 왜 안 찾아 보실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지금 생각하니 당신은 그 죄책감을 감당하기가 너무 괴로우셨던 것 같다. 입장을 바꾸어 보니 그건 정말 죽을 만큼 미안한 일이었던 것 같다. 만약 혼자 살아 남았다는 것을 알게라도 된다면 당신 자식들에게 부모님에게 아내에게 내 아버지는 사죄할 여지도 없는 것이 아니었을까. 또 소식을 알게 되고 만나게 된다 한들, 남한의 이 가족들은 또 어떻게 할 것이었을까.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고통이었을 것 같다.

 

이북의 가족들 소식 조차 모르고 아버지는 몇 해 전에 돌아 가셨다. 돌아 가시기 직전, 우리 큰 누이는 아버지 목소리라도 한 번 더 듣고 싶어서 아버지, 빨리 집에 가요. 빨리 나아서 집에 가요라고 아버지 귀에다 대고 울면서 말했다. 그러자 3일 간 혼수 상태에 빠져서 눈도 뜨지 못하시던 아버지가 우리 집은 함경북도 단천군 송동면 동호리…”라고 웅얼거리셨다. 그것이 남한의 가족들에게 우리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말씀이셨다.

 

남한 땅에서 50년 가까이를 사셨건만, 이북 고향에서 산 세월의 두 배에 가까운 날들을 남한에서 사셨건만 내 아버지에게 영원한 고향집은 이북이셨던 것이다. 남아있는 우리는 어떡하라고 아버지는 결국 마지막 순간에 이북 고향의 가족에게로 돌아가셨다. 전쟁은 지극히 개인적인 고통이다. 나에게 전쟁은 아직도 생생히 살아있는 현실의 상처다.

 

나는 아버지의 유일한 남한 땅의 아들이다. 아버지의 영혼은 이미 고향에 돌아 가 계시니(아니 어쩌면 남한에 사시는 평생 동안 마음과 영혼은 항상 거기에 계셨는지도 모른다) 당신의 몸도 고향으로 보내 드리는 게 자식 도리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는 지금 유골로 납골당에 모셔져 있지만 남북한 왕래가 자유로운 어느 날이 되면 아버지를 고향에 모시고 갈 것이다. 만약 당신의 북한 아들이 살아 계시다면 그 분 손으로 아버지의 유골을 뿌려 드리게 하고 싶다. 아버지의 북한아들과 남한 아들이 손을 꼭 잡고서 말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6월의 현충일 아침, 이 글을 쓰는 내내 눈물이 흐른다. 아버지, 이북의 형제들, 내 조국

Trackback 0 : Comment 1
  1. 민수 2007/11/19 23:58 Modify/Delete Reply

    글을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흐릅니다.
    저의 어머니도 이북 분이시고 1.4후퇴 때 피난오시고 홀홀단신이 되셨지요.
    가엾은 어머니.. 가엾은 이산가족 형제들..

Write a comment